중대재해 분야 이슈리포트 - 원청과 하청의 책임을 달리 판단하여 원청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결 분석
원청과 하청의 책임을 달리 판단하여 원청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결 분석
법무법인 대륙아주 이창욱 변호사
법무법인 대륙아주 이상진 변호사
1. 들어가며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은 2025. 5. 16. 하수관거 정비 공사현장의 근로자 사망에 따른 업무상과실치사죄, 산업안전보건법위반죄, 중대재해처벌법위반(산업재해치사)죄 등으로 기소된 피고인들에 하청 현장소장에게는 유죄를, 종합건설사인 원청 대표이사, 현장소장에게는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그 동안 법원은 원청과 하청에게 함께 형사책임을 인정하거나 함께 부정하는 결정을 내려왔는데, 이 사건은 법원이 하청의 형사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원청의 형사책임을 부정하였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있습니다.
본 이슈리포트에서는 해당 판결의 주요 내용과 법원의 판단 요지를 살펴보고, 그 시사점을 분석하고자 합니다
2. 판결의 요지
가. 기초사실 및 공소사실의 요지
2022. 10. 17., 군산시 소재 '중앙 분구 하수관거 정비사업' 현장에서 하청업체 A회사 소속 근로자G(69세, 남)가 하수관거 설치를 위한 터파기 굴착 구간(너비 1.3m, 깊이 3.1m)에 공구를 챙기러 내려갔다가 지반이 붕괴되어 매몰, 다발성 손상으로 사망하였습니다.
검사는 하청 현장소장 B에 대해 흙막이 지보공 설치 및 해체 작업 시 안전조치 미흡, 공사시방서 위반 등 업무상 주의의무를 게을리하여 근로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업무상과실치사, 산업안전보건법위반)로, 원청 대표이사 C에 대해 경영책임자로서 재해예방에 필요한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및 이행 조치를 다하지 않아 근로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중대재해처벌법위반)로, 원청 현장소장 D에 대해 작업계획서 미작성, 안전대 부착 설비 미설치, 분무기 벨트 덮개 미설치, 이동식 크레인 권과방지장치 미설치, 임시 분전반 미접지, 통로바닥 이동전선 설치 등 다수의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의무 위반 혐의로 각 기소하였습니다.
나. 법원 판단의 요지
1) 업무상과실치사 및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의 점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은 원청 회사가 하청 회사에 이 사건 작업을 하도급 하였고, 하청 회사 소속 근로자인 작업반장이 재해자와 함께 이 사건 작업을 하고 있었으므로, 관리감독자에 해당하는 하청 작업반장으로 하여금 안전한 작업방법을 결정하고 작업을 지휘하는 일을 수행하도록 하여야 하는 의무자인 사업주는 하청 회사라고 판단하였습니다.
이를 전제로 법원은 하청 현장소장 B에게 공사시방서와 다르게 되메움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흙막이 지보공을 철거한 점, 지반의 붕괴 또는 토석의 낙하에 의하여 근로자에게 위험을 미칠 우려가 있음에도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점 등을 이유로 공소사실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반면 법원은 원청 현장소장 D에 대해서는 하청 근로자의 작업행동에 관하여 직접적인 조치 의무를 부담한다고 보기 어렵고, 하청의 잘못된 방식의 작업을 지시하거나 잘못된 방식으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방치하였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하여 원청 현장소장 D에게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2) 중대재해처벌법위반의 점
법원은 원청 대표이사 C에 대하여는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의 업무수행 평가 기준 미마련 등 일부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 사실은 인정되나, 이 사건 사고는 하청 관리감독자 및 근로자의 과실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고 원청 현장소장이 위와 같은 잘못된 방식의 작업을 지시하거나 잘못된 방식으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방치한 사실이 없으며, 위험성 평가를 실시하는 등 안전보건총괄책임자의 직무를 소홀히하였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보아, 인정된 의무 위반과 이 사건 사고 발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 및 예견가능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3. 시사점
본 판결은 법원이 하청의 형사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원청에 대해서는 하청과 구분하여 책임범위를 구체화하고, 의무 위반과 재해발생 간 상당인과관계 및 예견가능성의 엄격한 증명을 요구하여 원청의 형사책임을 부정하였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있습니다.
법원은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안전조치 미준수는 주로 하청업체의 관리 범위 내에서 발생했다고 보아 하청 현장소장에게는 유죄를 선고한 반면, 사고 당시 원청 현장소장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지휘·감독 관계 및 위험 방치에 대한 증거 부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는 도급인의 산업안전보건법상 책임이 미치는 범위를 구체적인 작업 지휘 및 통제 가능성, 위험 인지 및 방치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또한 법원은 원청 대표이사가 일부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위반했다고 인정하면서도, 해당 의무 위반이 직접적으로 근로자 사망이라는 중대산업재해로 이어졌다는 점, 그리고 경영책임자가 사고 발생을 예견할 수 있었다는 점에 대한 검사의 증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형식적인 의무 위반 뿐만 아니라, 그 의무 위반과 재해발생 간의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인과관계 및 예견가능성이 입증되어야 함을 명확히 한 것입니다. 특히 하수급인의 직접적인 과실이 사고의 주된 원인으로 작용한 경우, 원청 경영책임자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더욱 엄격한 증명이 필요함을 시사합니다.
비록 본 사건에서 원청 대표이사는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하청업체의 직접적인 과실이 크게 작용했고, 원청의 의무 위반과 재해발생 간 인과관계 증명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위험성평가 절차 마련 및 이행 등 원청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노력을 일부 인정한 점은 기업들이 형식적인 서류 구비를 넘어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안전 시스템을 구축하고, 현장에서 안전수칙이 철저히 준수되도록 관리·감독하는 것이 중요함을 시사합니다. 만약 원청의 안전보건관리체계가 전반적으로 부실했거나, 하청업체의 위험 작업을 인지하고도 방치한 정황이 드러났다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본 판결은 도급인의 산업안전보건법상 책임이 미치는 범위를 구체적인 작업 지휘 및 통제 가능성, 위험 인지 및 방치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한 사례로서, 향후 유사 사건의 수사 및 재판 실무에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업들은 본 판결을 계기로 안전보건관리체계의 실질적인 구축과 현장 이행을 강화하고, 원·하청 간 안전보건 협력체계를 더욱 공고히 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