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통제가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외교 수단으로 떠오른 가운데, 중국 역시 글로벌 기술 전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하여 주요 핵심광물에 대한 수출 통제를 실시해왔으며, 이는 글로벌 산업 공급망에 큰 파급력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미국은 2022년 10월 17일 미국 기술을 사용한 첨단 반도체 장비나 인공지능 칩 등의 중국 수출을 포괄적으로 제한하는 수출통제를 발표하였고, 지난 10월 17일에는 이전 수출통제 조치에서 규정한 것보다 사양이 낮은 칩에 대해서도 수출을 통제하는 추가조치를 발표하였습니다. 이에 대응하여 중국은 지난 8월 게르마늄과 갈륨의 수출을 제한하였고, 이어서 지난 10월 20일에는 흑연 수출 통제 조치를 발표하였습니다.
이처럼 이번 수출통제는 중국이 서구 국가의 강화된 경제 안보 정책에 대응하여 주요 광물 및 원자재 공급망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고, 주요 광물 및 원자재를 무기화하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의 흑연 수출 통제 제도
중국 상무부는 지난 10월 20일, 2023년 12월부터 흑연 수출 통제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이차전지 음극재용 천연흑연(HS Code: 250410)과 인조흑연(HS Code: 380110)을 수출하고자 하는 기업은 2023년 12월부터는 이중용도 품목(민간용도로 생산되었으나 군수용도로 전환 가능한 물자) 여부를 심사받아 수출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지난 2006년 9월부터 중국은 7개 품목의 흑연의 수출을 통제해왔는데, 이번 공고를 통하여 총 9개 품목으로 통제 범위를 넓힌 것입니다.
중국은 이번 흑연 수출 통제의 주된 목적을 국가 안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실제로 특정 국가만을 대상으로 수출 통제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일본, 미국, 인도, 한국 등 흑연에 관하여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수출 허가 제도는 완전한 수출 금지와는 다른 개념으로, 상무부의 허가가 있는 경우 수출이 가능하나, 수출자는 ① 수출 신청서 작성 및 제출, ② 상무부의 수출신청서 심사(국가안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품목 수출 시 국무원 비준 필요), ③ 상무부의 수출 허가증 발급, ④ 해관에 수출 허가증 제출 및 통관수속 진행, ⑤ 해관의 검사 및 승인이라는 여러 단계의 절차를 거쳐야만 흑연을 수출할 수 있게 됩니다.
흑연 수출 통제가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
위와 같이 흑연 수출이 통제되면, 흑연 조달이 지연되어 한국과 미국의 배터리 및 전기차 사업을 아우르는 공급망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흑연은 이차전지의 4대 소재(양극재, 음극재, 전해질, 분리막) 중 하나인 음극재를 구성하는 핵심 원료로, 배터리 공급망의 핵심 품목입니다. 실제로 전기차 한 대 당 평균적으로 흑연 50-100kg이 배터리 팩의 음극재에 들어가는데, 이는 배터리에 들어가는 리튬의 약 두배의 양입니다.
그런데 국제 에너지 기구(IEA)의 2022년 전기차 배터리 세계 공급망 보고서에 따르면, 탄자니아, 모잠비크, 캐나다, 마다가스카르에서 흑연 채굴 프로젝트가 개발되면서 천연 흑연 생산지가 이전보다 다양해졌지만, 여전히 천연 흑연 채굴의 80%는 중국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천연 흑연뿐 아니라, 전 세계 인조흑연의 가공 역시 70%가 중국에서 이루어지고 있어, 중국은 흑연 공급에 대하여 강력한 통제권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흑연에 대한 중국 수입 의존도는 2023년 9월 기준 천연흑연은 97.7%, 인조흑연은 94.3%로, 사실상 흑연의 전량을 중국으로부터 수입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한국이 흑연 공급에 관하여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중국의 수출 통제로 인하여 흑연 조달이 지연되면 한국 전기차 배터리 사업 확장에 제동이 걸리게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미국 역시 흑연에 관한 중국 의존도가 매우 높습니다. 미국 지질조사처가 발표한 핵심광물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미국에서 천연 흑연이 전혀 생산되지 않았으나, 약 95개 미국 기업이 천연 흑연 약 7만2000톤을 소비하였습니다. 또한 미국이 2022년 발간한 CRS(Congressional Resource Service) 보고서 역시 미국 내에는 활성 흑연 광산이 없고 추가적인 개발 계획도 없어 흑연의 공급망 취약성이 높다고 지적했습니다. 미국은 미국 내 흑연 소비량의 약 3분의 1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바, 이번 수출 통제로 흑연 조달이 지연되면 미국 전기차 및 배터리 산업 역시 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흑연 수출 통제에 대한 정부 대응
한국 정부는 국내 배터리 기업과 함께 흑연 수급 안정화를 위한 대응책을 추진해 나가고 있습니다. 먼저, 정부는 기업들이 차질 없이 흑연 물량을 확보할 수 있도록 산업통상자원부-유관기관(KOTRA 등) 합동 <흑연 수급대응 TF>를 가동하였습니다. 나아가 정부는 국내에서도 인조흑연을 공급할 수 있도록 내년에 가동 예정이었던 인조흑연 생산공장을 조기가동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할 예정입니다. 또한 정부는 탄자니아‧모잠비크 등 흑연 매장량을 보유한 국가로부터 대체물량을 확보하고, 실리콘 음극재 등 흑연 대체재를 적극 개발하는 등 흑연 공급망 자립화 및 다변화를 위한 대응역량도 확충해나갈 계획이라 발표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미국 주도 IPEF(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 국가 간의 공급망 협정을 통해서 수출 통제에 대한 공동 대응을 추진할 필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미국 정부는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하며 회복력 있는 핵심 공급망을 구축하고자 동맹국과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IPEF를 활용하여 우호국들과 공급망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됩니다. 또한 미국 에너지부(U.S. Department of Energy)는 지난 11월 15일 바이든 대통령이 2021년에 서명한 인프라법에 따라 배터리 및 배터리 소재의 국내 생산을 강화하기 위해 최대 35억 달러를 지원한다고 발표하였습니다.
대륙아주 코멘트
비록 중국이 수출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허가제를 도입하는 것일지라도, 중국이 수출 통제를 미국에 대한 보복 수단으로 활용할 경우, 미국에 공장을 둔 한국 배터리 기업에 대한 수출 허가는 받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추후에 중국이 수출을 금지하는 등 통제를 강화하는 경우, 중국 의존도가 높은 국내 기업의 피해가 향상될 수 있으므로, 배터리 공급망이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현재의 구조를 개선하여야 합니다.
우선 단기적으로 우리 기업들은 수출통제 시행(23. 12. 1.) 전까지 흑연 재고를 충분히 확보해두어 공급 차질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며, 중국 외의 국가로 흑연 수입선을 전환해야 합니다. 천연흑연은 모잠비크, 탄자니아, 마다가스카르 등의 아프리카 대륙 국가를, 인조흑연은 일본, 스페인, 독일 등의 국가를 대체 수입국으로 검토해볼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한국 정부가 수출 통제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하는 각종 제도, 협정 등 정부 정책의 변화를 면밀히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륙아주의 GCG, 워싱턴 D.C. 연락사무소 및 D&A Advisory Inc.는 국내 기업들에게 중국의 무역 정책 변화에 즉각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내부통제제도(컴플라이언스)와 관련하여 적절한 전략을 수립하기 위하여 제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대륙아주는 필요한 경우 기업과 상호 긴밀한 협조를 통해 신속 대응할 수 있도록 국제 무역 정책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주시하겠습니다.